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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사성제 : 고성제, 고집성제, 고멸성제, 고도성제   
팔고 : 생, 노, 병, 사,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음성고   

팔정도(八正道)  : 세존의 의식 (중도) - > 팔정도로 훈련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 정견]
ㅇ 정견(正見)-> 사성제에 대한 앎이 생김
ㅇ 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
    정견(사성제)에 대한 사유를 통해 표현되는 언어, 행동 (신구의 삼업)
ㅇ 정명 (正命)-> 사성제의 기준에 맞춰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가는 삶
ㅇ 정정진(正精進)-> 사성제를 기준으로 지속하는 힘
ㅇ 정념(正念)정정(正定)->
     양과 시간을 정직하게 사성제를 공부, 마음수행.  마음까지도 사성제에 정렬시킨다. 
ㅇ 다시 정견 : 사성제를 아는 단계를 넘어 사성제를 깨침 

3전 12행상
1전  : 팔고가 고통,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은 갈애 때문,
갈애가 제거되면 괴로움은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법이 팔정도임을 (인식)
2전 :  고통에 대해 알고  괴로움이 버려져야 하고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팔정도를 행함 (인정하고 자기화하는 과정) 
3전 :  고통에 대해 두루 알았다 괴로움은 버려지고 괴로움은 소멸되었다
팔정도를 닦음으로 괴로움은 소멸되었다 (인식의 변화)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

 

붓다스쿨

원빈스님과 함께 보리심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기도, 수행, 공부, 봉사를 이어가는 붓다스쿨입니다.

cafe.daum.net

69회차 가을정진 23일 (6713일) - 금강경에 물들다 20화

제8장 선정바라밀
III. 어떻게 사마타를 닦는가  2. 널리 말한다 2) 자타교환의 수행법 (2) 자타교환 수행의 이론
나. 상세히 밝힌다 다) 자신을 애착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의 이익과 폐단
(가) 널리 설한다. 

8 : 127 자기 자신을 존중하게 되면 악도에 들어 못나고 어리석은 이가 되지만,
남들을 존중하게 되면 선취에 태어나고 존경과 지혜를 얻는다네.
<입보살행론 중> 

 

원빈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20화 - 법이란 무엇인가? 진리일까? 존재일까? 
https://youtu.be/x0byx1GW6Fs?si=z_GuAvd8TAJa9qyS

 

69회차 가을정진 24일 (6714일) - 금강경에 물들다 21화

제8장 선정바라밀
III. 어떻게 사마타를 닦는가  2. 널리 말한다 2) 자타교환의 수행법 (2) 자타교환 수행의 이론
나. 상세히 밝힌다 다) 자신을 애착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의 이익과 폐단
(가) 널리 설한다. 

8 : 128 자신을 위해 남들을 부리면 뒤에 자기가 부림을 당하게 되지만
남들을 위해 자신을 부리면뒤에 군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네.
<입보살행론 중> 

 

원빈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21화 - 진리 VS 승리, 무엇을 위한 것인가? 
https://youtu.be/FAn345Vdiz8?si=-mPDdYlESkzZK-uw

 

고정된 절대적 진리나 명분에 집착하여 다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본래 목적인 내면의 평안(안심)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69회차 가을정진 25일 (6715일) - 금강경에 물들다 22화

제8장 선정바라밀
III. 어떻게 사마타를 닦는가  2. 널리 말한다 2) 자타교환의 수행법 (2) 자타교환 수행의 이론
나. 상세히 밝힌다 다) 자신을 애착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의 이익과 폐단
(나) 결의 結義. 

8 : 129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들의 행복을 바라는 데서 오고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자신만의 행복을 바라는 데서 온다네.
<입보살행론 중> 

 

원빈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22화 - 불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깨달음, 덜어내는 것!

https://youtu.be/pEBaBcOqcRA?si=iud0e233cZdW7A_d

 

불교의 깨달음은 무언가를 새로 채우거나 정해진 법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관념과 ‘상(相)’을 덜어내어(Minus) 본래 밝은 지혜의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원빈스님의 글
소참법문 경전을 만난 순간 이미 시작된 열 가지 기적: 『무량의경』 십공덕품으로 읽는 지경(持經)의 힘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모래를 모아 불탑을 쌓더라도, 그 정성 하나로 이미 모두가 부처님의 도를 이루었느니라."

-법화경 방편품

금강경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계신가요? 

특히 금강경학교는 다양한 오종법사행 프로그램을 통해 실천하는 경전 공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하려고 욕심부리면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으니 부담 없이 꾸준히 지경 수행을 지속하시길 권선합니다.
"스님, 그런데 묘법연화경은 언제 시작하는 건가요?"
몇 년 전 묘법연화경 특강을 할 때 한 청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특강을 듣기 위해 법화경을 예습하고 온 상태였는데 누가 참석했는지, 왜 삼매에 드셨는지, 세상이 왜 진동했는지...

서분을 다 읽어도 <법화경>을 시작한 건지 아닌지를 구분 못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서분은 법화경이 어떤 연유로 설해졌는지에 대한 인연담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충분히 헷갈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량의경>이라는 법문을 하시는 모습이 나오고,

<묘법연화경>을 설하신 것은 일월등명불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매에 들어 계시는데

문수보살이 답변을 하기도 하는 등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법화경에 속한 내용이니 법회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서분에 등장하는 <무량의경>의 핵심 주제는 만법귀일입니다.

무량한 뜻은 모두 다 '무상'의 진리 하나로부터 나옴을 밝히는 경전입니다.

법화경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회삼귀일의 이치를 밝히시기 전 예열을 마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무량의경> 마지막 부분에는 지경의 공덕이 10가지로 표현되는데,

경전 공부를 지속하기를 희망한다면 지경의 공덕을 이해하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부족한 범부도 당당히 보살이 되는 공덕

제1공덕은 미발심자 발보리심(未發心者 發菩提心)입니다. 

지경은 수지, 독, 송, 서사유통, 위인해설을 모두 포섭합니다. 

법화경을 지니고 공부하면 아직까지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한 이들도 자연스럽게 발보리심하게 됩니다. 

보살로 화생할 수 있는 모태의 업을 얻는 것입니다.
제2공덕은 자벌미단 능도타인(自伐未斷 能度他人)입니다.

비록 자신의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한 상태라도 능히 다른 사람을 열반으로 이끌 수 있는 공덕이 바로 지경의 힘입니다.

심병을 고치는 방법은 경전이라는 의서에 있습니다.

이를 열심히 공부한 의사는 비록 자신이 병들었다고 해도 능히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지경의 공덕에 의지한 결과물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더라도 바른 진리를 남에게 설하는 이는, 

비록 눈먼 이가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밤길을 밝혀 다른 이들을 건너게 하는 것과 같다." 

-화엄경

제3공덕은 수미이범부 능시대보살도(雖未離凡夫 能示大菩薩道)입니다.

비록 범부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라도 경전에 의지하면 능히 대보살의 진리를 나타내 보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말이라는 껍데기에 깨달음을 채우지 못하면 소용없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연이 닿는 이는 껍데기를 보고도 깨달음으로 나아가기도 하기에 이는 법계를 돕는 진실한 법보시가 됩니다.

붓다의 심부름꾼이 되어 인연을 정화하는 공덕

제4공덕은 제불사도 권속청정(諸佛使導 眷屬淸淨)입니다. 

경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사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붓다의 마음을 학인의 입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니 이에 의지한다면 

대중들을 이끌고 지인들의 마음이 청정해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제5공덕은 수지홍포 능현대위덕(受持弘布 能現大威德)입니다.

오종법사행을 실천함으로써 경전을 널리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수지자 역시 위대한 공덕을 얻게 됩니다.

중죄를 씻어내고 장애를 굴복시키는 공덕

제6공덕은 생사중죄 소멸(生死重罪 消滅)입니다. 

모든 수행이 번뇌와 악업을 씻는 역할을 하지만 특히 지경 수행은 비누로 씻는 것과 같아서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모든 중죄를 씻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제7공덕은 득무생인 획제다라니(得無生忍 獲諸陀羅尼)입니다.

경전은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불사의 문을 여는 방법입니다.

이 경장에는 해탈 열반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으니 지경은 곧 총지다라니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제8공덕은 최복마원 득불퇴전(摧伏魔怨 得不退轉)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마구니가 있습니다.

첫째, 나 개인과 원결을 맺고 있는 이들이 마구니로서 작용하는 경우입니다.

둘째, 불법을 훼방하는 마구니입니다. 오종법사행을 습관처럼 실천한다면 어떤 마구니를 만나더라도

경전의 힘으로 그들을 모두 굴복시켜 불퇴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불길이 일어날 때 마른 풀과 젖은 나무를 가리지 않고 모두 태워 재로 만들듯, 

바른 경전의 지혜는 수행자가 지닌 크고 작은 모든 죄업을 남김없이 소멸시킨다." 

-대지도론

 

부처님의 눈을 열어 마침내 성불하는 공덕

제9공덕은 획무애변 혜명상속(獲無礙辯 慧命相續)입니다. 

단순히 경을 지니는 것을 넘어 독송과 서사 그리고 위인해설을 훈련하는 과정을 거치면 

걸림 없는 말솜씨를 얻게 되고, 이를 통해 인연 닿는 중생들에게 법을 전하게 됩니다. 

이 모든 법보시의 과정을 통해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후대로 전하는 공덕을 짓게 됩니다.
제10공덕은 속증보리 개시오입(速證菩提 開示悟入)입니다. 보리심을 완성하는 여정에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오종법사행을 실천한 수행자는 이미 지도를 지니고 있고 해독이 가능하기에,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순간 가장 빨리 보리도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진리를 구하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 보여 깨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을 갖춘 것입니다.

이미 부처님의 마음을 얻었으니 안심하라

다시 묻습니다. <묘법연화경>은 언제 시작되는 건가요? 서분이 시작되는 그 순간이 아닙니다.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전을 지니는 순간 이미 가르침은 시작된 것입니다. 

나아가 오종법사행이라는 지경 수행 역시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지경 수행을 버리지 않는 한 이미 우리는 부처님의 말과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이처럼 위대한 지경 수행을 시작했으니 이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극락처럼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요?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나면 싹이 트고 이삭이 맺히는 것은 법의 순리이니,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아도 때가 이르면 저절로 결실을 맺느니라." 

-잡아함경

금요 경전 수업 <법화경> - 7시 30분 시작 https://www.youtube.com/@buddha_school/live
원빈스님의 법화경 공부 모임 안내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TqU/2193

 

원빈스님의 글
행복의길 "상호 헌신, 참된 스승과 제자의 길"

적절한 때에 스승의 곁으로 찾아가서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태도로 배우십시오.
가르침을 듣고 의미를 가슴에 새겨 자제함과 청정을 삶 속에서 실현하십시오.
-<숫타니파타 326, 계행이란 무엇인가의 경>-

스승을 찾아가는 두 가지 적절할 때가 있습니다.
첫째, 스승에게 헌신하는 때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상호간의 헌신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자는 주기적으로 스승을 위해 할 수 있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둘째, 스승이 필요할 때입니다. 삶의 여정 속에서 불안과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먼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배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스승에게 인터뷰를 해야 합니다.

이 때 스승은 제자를 헌신적으로 도와줘야 하죠.
이 상호간의 헌신이 없다면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마음에 물들기 마련입니다. 보고 듣고 따라 걷다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를 위한 근간은 적절한 때의 만남입니다. 그래야 보고 듣고 따라 걸을 수 있으니까요.
스승을 만날 수 있는 으뜸가는 행운을 누리시길.

"선남자여, 제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방법으로 스승을 섬겨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가까이서 모시며, 배우기를 열망하고, 정성껏 시봉(봉사)하며,

가르침을 경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디가 니까야 (DN 31), 싱갈라 교계경(Sigālovāda Sutta)>-

 

원빈스님의 글
행복의길 "미래의 나에게 재복(財福)을 전송하십시오"

'내 것'이라고 집착하며 움켜쥔 모든 것은 결국 죽음의 순간 남김없이 빼앗깁니다.
이것을 명확히 아는 지혜로운 자는 소유욕의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숫타니파타 805, 늙음의 경>-

재산을 비롯한 소유물은 '밥'과 같습니다. 이 밥으로 인해 나도 먹고 나눠 먹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끼면 결국 썩어버립니다.
제한시간이 있습니다. 이 재산을 미래의 밥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덕지음입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소유물에 집착하여 아끼고 또 아껴봐야 결국 그 끝은 빼앗김입니다.
단 하나도 다음생에 가지고 갈 수 없으니.
지혜로운 자는 현실의 재산을 세상을 위해 보시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재산을 공덕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다음생 그리고 다다음생의 미래에 재산을 전송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복이 미래의 나를 도울 것이니까요.
재복이 별로 없다고 느끼시나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게 재복을 전송하지 못한 것입니다. 밥 아끼다가 썩어서 버린 것이죠.
제한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 시간 동안 재산을 공덕으로 치환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간 다되면 썩어버릴 이 밥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집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밖으로 꺼낸 물건만이 유용하게 쓰이고 안에 남겨둔 것은 모두 재가 되어버리듯,
세상이 늙음과 죽음의 불길로 타오를 때 보시(布施)로써 자신의 재산을 구출하라.
기꺼이 보시한 것은 참으로 잘 건져낸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 (SN 1.41), 불타오름의 경(Āditta Sutta)>-

 

원빈스님의 글
소참법문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청년에게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찾지 마세요. 만들면 됩니다."

청년 법회 차담 시간에 나온 질문과 답변의 결론입니다. 중간 과정을 설명해 드릴게요.
좋아하는 것이란 욕구를 의미합니다. 이 욕구는 마음이라는 자동차의 연료가 됩니다.

흔히 억지로 하는 일이 금방 끝나는 이유는 의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름이 다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의지력에 신경 쓰지 않아도 끝까지 지속할 수 있습니다.

방전된 자동차는 주유소를 찾아야 한다

 

기름이 떨어져 빨간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유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안 가면 차가 멈추죠? 이것이 번아웃이고 우울증입니다.

밖에 나가기도 싫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든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다면 제때 주유를 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보고 찾아가든, 그냥 드라이브하며 무작정 찾아다니든 본질은 똑같습니다.

찾아다니며 직접 경험해 봐야 하는 것이죠. 가만히 앉아서는 주유소를 경험해 볼 수 없습니다.

기름이 싼지, 동선에서 가까운지, 서비스가 좋은지, 기름의 질이 어떤지는 직접 가서 경험해 봐야 아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죠. 만약 욕구를 찾고 싶다면 왕도는 없습니다.

이것저것 인연 닿는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압니다. 시켜서 먹어봐야 맛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듣지 않는 것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직접 행하는 것만 못하다." 

-순자

좋아하는 것은 느낌일 뿐입니다. 이 느낌을 찾으려면 일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며 기뻐하던 친구의 경험담에 갇히지 마세요. 

과거 좋았던 경험을 곱씹으며 그것을 찾아다니지 마세요.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공부를 한 뒤 생겨난 상상에 묶이면 안 됩니다. 

그런 느낌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찾을 수 없습니다.

쾌락에서 자비까지, 내 마음의 5단계 연료

1단계: 향락심(享樂心) - 찰나의 쾌락 뒤에 찾아오는 지루함과 파멸
사람들은 의식의 수준에 따라 욕구가 모두 다릅니다.

가장 의식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그저 말초적 쾌락을 좋아하는데 이를 '향락심'이라고 합니다.

이를 채우기 위해 도덕과 책임 등을 모두 무시하고 악업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 처음에는 쾌락을 누린 뒤 중간에 지루함을 겪고, 끝내는 파멸에 이릅니다.
2단계: 향상심(向上心) - 성장의 기쁨과 저절로 따라오는 보너스
어떤 사람은 '향상심'을 즐거워합니다. 그도 당연히 쾌락을 좋아하지만 무분별하게 즐기면 그 끝이

파멸임을 알기에 자제합니다. 대신 자신의 실력과 지식, 자산과 명예, 몸과 마음이 발전하는 것을 즐깁니다.

향상을 이루면 쾌락은 저절로 따라오는 1+1에 불과하다는 것을 점점 알기에 더더욱 발전이 즐거워지는 것이죠.

"작은 즐거움을 버려서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지혜로운 이는 작은 즐거움을 버리고 큰 즐거움을 취한다." 

-『법구경』

3단계: 향선심(向善心) - 집착의 홍수를 다스리는 올바름의 행복
향상을 넘어 '향선심'을 기뻐하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향상의 추구가 지나치면 집착이 됩니다.

이 욕구가 홍수가 되어 온 삶을 잡아먹히는 경우도 생깁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선을 추구함으로써 이를 제어합니다. 선이란 단순한 착함이 아니라 올바름으로써,

고통의 길에서 벗어나 행복의 길로 삶을 이끌어가는 과정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니 기쁠 수밖에요.
4단계: 출리심(出離心) - 세간의 유한함을 꿰뚫어 본 빛바램의 자유
선의 추구를 통해 얻은 행복도 일시적입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백만 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죠.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결국 그 행복은 사라집니다. 이것이 지긋지긋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간의 행복을 누리는 것에 허망함을 느끼고 벗어나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출리심'입니다. 전문 수행자들은 이 출리심을 바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수행에 몰두합니다.
출리심의 기본은 빛바램입니다.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세간에서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무소의 뿔처럼 홀로 열반으로 나아갑니다. 개인의 해탈을 욕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5단계: 자비심(慈悲心) - 모두와 함께 해탈로 나아가는 보살의 대원력
이와 달리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반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자비심'의 실천을 즐거워하기에 자신을 돕듯 주변 사람들을 돕습니다.

이러한 보살들은 수행의 공덕이 커지는 만큼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탈로 나아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되고 싶다면 남을 배려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그것이야말로 내 마음에 가장 깊고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

어떤가요? 다양한 욕구 중 무엇에 가슴이 뛰나요?

향락심 쾌락의 범주에 갇히지 말고 찾아보세요. 향상심과 향선심, 그리고 출리심과 자비심을

좋아할지도 모르니 시식하듯 이를 경험해 볼 때 욕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눈에 반하는 것도 결국 업(業)의 작용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링컨

내 욕구를 꼭 찾아다녀야 하나요? 내가 정하면 안 될까요? 

주인이 나라면 그냥 좋아하는 것을 정하고 느낌을 만들면 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재미와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을 그냥 결정합니다. 그리고 반복합니다. 좋아질 때까지. 이것이 끝입니다.
사람에게 첫눈에 반해본 적이 있나요? 로맨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업'입니다. 

업에 이끌려 좋다고 느낀 것이죠. 삶의 주인은 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업을 만들 수 있다면? 좋아하는 것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업이란 행동입니다. 이것이 업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 반복의 과정에서 두뇌는 시냅스를 연결시킵니다. 반복을 더하면 연결된 시냅스가 굵어집니다.

더 반복하면 두뇌를 넘어 마음에 각인됩니다. 그럼 두뇌도 마음도 이 행동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욕구를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죠.

남의 주유소를 기웃거리지 말고 직접 차려라

처음에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에 뭘 좋아하는지 욕구 찾으러 여기저기 다니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자본이 생긴다면 굳이 남이 세운 주유소를 헤맬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냥 집 근처에 주유소를 차리면 됩니다. 안 그런가요?
남이 파놓은 우물을 기웃거리며 목말라하지 마세요.

오늘부터 내 마당을 파서 맑은 샘을 솟아나게 하는 사람, 그가 바로 자기 삶의 진짜 주인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

사천 극락사 9월 법회 일정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TqU/2230?svc=cafeapi
 

원빈스님의 글
행복의길 "알고, 닦고, 완전히 버렸습니까?"

알아야 할 것은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은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은 완전히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자 붓다입니다.
-<숫타니파타 558, 쎄라의 경>-

수행의 순서는 정해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시계생천의 선을 닦습니다. 이는 큰 복을 만들어 중생을 향상시킵니다.
다음으로 욕환출리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쾌락의 끝은 파멸이기에 이에 대해 출리심을 일으킬 때 비로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염리심을 일으켜야 시간 낭비를 끝낼 수 있죠.
이제 청정한 마음가짐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럼 본론에 해당되는 삼전십이행상을 닦습니다.
이는 사성제의 정견을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사성제를 아는 시전, 사성제를 닦는 권전, 그리고 사성제를 통해 번뇌를 버리는 증전입니다.
붓다가 스스로를 검증한 세 가지 기준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자들 역시 사성제 정견에 대한 시전과 권전 그리고 증전으로 자신을 검증합니다.
완전히 검증을 마쳤을 때 세상에 아라한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수행이 끝인가요? 그럴리가요!
자신을 위한 수행을 마쳤기에 무학이라고 하지만, 이제 세상을 위한 수행이 남았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전법선언입니다.
남은 삶을 온전히 바쳐 중생을 구하는 길을 떠나는 것.
이것이 바로 부처님과 제자들이 길 위에서 살아가신 자비심 입니다.
정리해볼까요?

시계생천 -> 욕환출리 -> 삼전십이행상 -> 전법선언의 실천

이것이 부처님의 차제설법의 개요입니다. 이런 교과과정으로 수행하고 계신가요?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대해 세 번 굴리고
열두 가지 형태(三轉十二行相)로 있는 그대로의 지견이 내게 지극히 청정해졌을 때,
비로소 나는 신과 악마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증득했다고 선언했다."
-<상윳따 니까야 (SN 56.11),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경 (초전법륜경)>-

 

원빈스님의 글
소참법문 사띠 명상과 공적영지: 불꽃을 넘어 진짜배기 불을 지피는 법

송덕사에는 아궁이가 있습니다. 종종 솥을 걸고 떡볶이를 해 먹는데, 먼저 불을 붙여 놓아야 합니다.

잔나무를 좀 깔아둡니다. 그리고 큰 나무 두세 개를 넣어둡니다.

나무 위에 나뭇잎을 좀 뿌린 뒤 종이에 불을 붙여서 공간에 쑤셔 넣습니다.

그리고 잘 지켜보면서 부채질도 좀 해주고 불쏘시개를 좀 넣기도 하며 기다립니다.

큰 나무에 온전히 불이 붙을 때까지.
사띠 명상을 할 때 참 좋은 현상이 많이 일어납니다.

편안해지고, 막연히 기쁘기도 하며, 심상 속에서 신기한 경험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기다려야 합니다. 완연하게 사띠의 질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며 마음의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두 개의 마른 나무를 맞대어 불을 구할 때, 

쉬지 않고 계속 문질러야 마찰열이 생겨 불꽃을 얻는 것과 같다. 

만약 중간에 손을 쉬어버리면 온도는 식어버리고 불은 결코 얻을 수 없다." 

-잡아함경

마찰열을 모으는 일에는 지름길이 없다

 

아궁이에 불 때는 일은 라이터가 있어서 그래도 쉽게 불이 붙습니다.

하지만 사띠에 불을 붙이는 일은 막대기 비비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따로 왕도는 없습니다.

부지런히 마음의 일을 올바로 반복하며 마찰열을 모으고 또 모을 뿐입니다.
조급한 수행자들은 성과를 기다립니다. 그럼 오해하기 마련이고 심하면 자신을 속이기도 합니다.

막대기를 비비다 보면 손이 뜨거워집니다. 그럼 이 뜨거움이 불이라고 오해합니다.

어쩔 때는 틱 하고 불 튀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럼 불이 붙은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열심히 비비고 있는데 옆집 창문에 불이 켜지기도 합니다. 그럼 드디어 불이 붙었다고 느끼죠.

"물에 젖은 나무로는 불을 피울 수 없듯, 욕망과 조급함에 젖은 마음으로는 삼매의 불을 지필 수 없다. 

오직 부단한 정진으로 마음을 말리고 닦아야 비로소 불이 일어난다." 

-맛지마 니까야

조급함은 집착일 뿐이고 사띠의 질을 깎아먹는 방해물입니다.

불을 붙이기 위한 원인은 비비는 마음의 일뿐입니다.

손의 뜨거움과 틱 소리, 밝은 조명을 좇는 것은 그만두고 해야 할 일,

즉 비비는 것을 반복해야 온도가 진정으로 올라갑니다.

광명상은 불꽃일 뿐, 아직 불이 아니다

"수행 중에 온갖 기이한 광경이나 특별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이를 깨달음이라 집착하지 않으면 

좋은 진전이 되지만, 만약 성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여기면 마장(魔障)에 떨어지게 된다." 

-능엄경

그리고는 툭! 하고 마음이 밝아지죠. 광명상이 생긴 것입니다. 너무나도 기쁜 일입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성과가 나왔고 내 수행을 증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은 이렇게 말하죠.
"광명상이 생긴 것은 사띠의 질이 좋아졌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이제 광명상은 신경 쓰지 말고 마음의 일을 하세요."
스승이 질투하는 것일까요? 수행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뻤던 마음이 식어 내리며 원망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스승 역시 그의 스승에게 이처럼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불이 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비는 일을 통해 불꽃이 튄 것이고, 불쏘시개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굵직한 번뇌 덩어리에 완연히 불이 옮겨붙기 전까지는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됩니다.

어렵게 붙인 불이 허망히 꺼져버릴 수 있으니까요.
 
빛을 좇지 말고 마음의 일을 반복하라

불나방처럼 빛을 좇는 것은 생명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향상을 원한다면 신기함을 좇는 것이 아닌 마음의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면전에서 아무리 신비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저 호흡을 보세요. 

사띠를 두기로 결정한 중심점 외에는 모든 현상이 방해물이니 해야 할 일만 반복하세요.

"수행자는 그저 호흡을 들이쉬면서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내쉬면서 '내쉰다'고 분명히 알 뿐이다. 

그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고, 세상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대념처경

공적영지를 깨우는 두 가지 질문: 깨어 있는가, 고요한가

"고요하면서도 어둡지 않고 또렷하며(寂寂而惺惺), 또렷하면서도 산란하지 않고 고요하니(惺惺而寂寂), 

이것이 바로 참된 마음의 본래 모습이다." 

-진심직설

사띠 명상 중 사띠 쓰기는 5가지 질문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살피는 훈련입니다.

이 중 '깨어 있는가?' 그리고 '고요한가?'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합니다.

'깨어 있는가?'

뜨거워진 사띠가 번뇌를 태우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 바로 깨어있음입니다. 

어리석음의 다른 이름은 무명(無明)입니다. 사띠가 없는 얼빠진 마음은 깜깜합니다. 

사띠의 질이 좋아지면 마음은 깨어나 밝아집니다. 질 좋아진 사띠를 올바로 쓰기 위해 자주 자문해 보세요.

'고요한가?'

두 번째 현상은 탐욕과 분노와 같은 거친 번뇌가 고요해지는 것입니다. 

사띠는 무명의 어둠을 깨우는 동시에 중구난방으로 날뛰는 소음을 태웁니다. 

이것이 공적영지(空寂靈知)의 시작으로서, 잔불을 넘어 번뇌를 직접 태우는 불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잔불이 제대로 붙을 때까지는 비비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불이 붙은 후에는 그 불을 번뇌의 장작으로 옮겨보세요.

옮기는 방법은 '고요함과 깨어있음'의 두 가지를 자문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마음이 공적해지고 신령스러운 지혜가 드러난다면 드디어 번뇌의 장작에 진짜배기 불이 붙은 것입니다!

이제 공적영지의 화력을 높여 정성스럽게 만든 떡볶이를 중생들과 함께 나누면 되지 않을까요?
 

숫타니파타 100일 필사 59일차

모든 존재에 대한 폭력을 내려놓고 단 하나의 생명도 상처 입히지 말라.
자녀조차 애착치 않거늘 하물며 동료이랴.  코뿔소의 외뿔처럼 고고히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35, 코뿔소의 외뿔의 경-

관계를 망치는 공식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서로의 선을 지키지 못하면 애증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옛 스님들께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하라고 강조하신 것처럼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고고하게 홀로 걸어갈 수 있는 독립의 힘이 없다면 자꾸 타인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소중한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하고 싶다면, 만났을 때는 최선을 다해 기뻐하고 

헤어진 뒤에는 미련 없이 관심을 끊어내는 마음의 선을 철저히 지켜보세요.
- 원빈스님 -

긴 글 읽기 :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AVE8/2961

 

관계를 망치는 공식 '애착 = 친함 + 집착'

관계를 망치는 공식 '애착 = 친함 + 집착' 모든 존재에 대한 폭력을 내려놓고단 하나의 생명도 상처 입히지 말라.자녀조차 애착치 않거늘 하물며 동료이랴.코뿔소의 외뿔처럼 고고히 혼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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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100일 필사 60일차

세상 속 모든 유형의 고통은 집착을 원인으로 생겨납니다.
이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는 집착을 되풀이하며 고통에 묶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괴로움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여 어떤 이유로도 집착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숫타니파타 1054, 학인 멧따구의 질문에 대한 경-

집착을 끊어내기

모르고 짓는 죄는 개선의 여지가 없어 향후 짓는 죄가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생은 고통의 원인이 집착임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핑계를 대며 번뇌를 반복합니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그저 핑계만 대는 어리석은 자를 과연 수행자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사띠는 집착의 실체를 잊지 않고 늘 깨어 알아차리는 훈련입니다. 

집착은 곧 나를 태우는 불길과 같으니, 타오르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부디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집착을 온전히 끊어내시길 바랍니다.
- 원빈스님 -

긴 글 읽기 :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AVE8/2963

 

"당신은 집착에 핑계를 대고 있습니까?"

당신은 집착에 핑계를 대고 있습니까? 세상 속 모든 유형의 고통은 집착을 원인으로 생겨납니다.이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는 집착을 되풀이하며 고통에 묶입니다.그러므로 괴로움의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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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100일 필사 61일차

적절한 순간 가르침을 들을 수 있고 감각을 제어하여 청정한 삶을 살아가며
사성제의 진리를 꿰뚫어 열반을 실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축복이다.
-숫타니파타 267~268, 위대한 축복의 경-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

살아가면서 흔들리거나 의심이 생길 때, 기도를 요청하고 질의응답을 나누며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으뜸가는 축복입니다. 특히 수행자에게 정기적으로 수행을 점검받으며 

스승과 도반의 흐름에 접속하는 일은 방일함을 막아주는 가장 귀한 행운이 됩니다. 

역경이 찾아와 무기력해질 때조차 나를 단단히 잡아주는 흐름을 타는 것이야말로 

수행을 지속하는 최상의 조건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든든한 흐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계신가요?
- 원빈스님 -

긴 글 읽기 :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AVE8/2965

 

"의지할 수 있는 정진의 흐름이 있습니까?"

의지할 수 있는 정진의 흐름이 있습니까? 적절한 순간 가르침을 들을 수 있고감각을 제어하여 청정한 삶을 살아가며사성제의 진리를 꿰뚫어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축복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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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가야 할 '무위(無爲)의 길'

첫째, 불안을 자각하는 순간 무조건 멈추십시오.
둘째, 면전에 사띠를 두고 성성하게 호흡하십시오.
셋째, 안심이 찾아오면 지금 다가온 인연에 기꺼이 전념하십시오.
넷째, 내 마음의 모든 작용을 그저 내비두고 구경하며 무위를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정진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저는 위험과 적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저처럼 저의 수호신과 전 우주의 몸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위험과 적으로부터 자유롭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