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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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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차 동안거 정진 35일 (5727일)

 

증오에 찬 사람들 속에서도 증오 없이 살아가니 아! 얼마나 행복한가.

증오에 찬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는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네.  <법구경> 中

 

https://youtu.be/7v9iZzQooFQ

 

행복경

인내하고 온화하게 말하며 때에 맞추어 수행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다

 

왕생게 2송
세존이시여!
저는 일심으로 모든 시방에 장애가 없는 광명을 가진 여래에게 귀의하옵고 안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_()()()_

 

입보살행론 168일차
9:146 백천만 가지 원인이 있더라도 비존재를 존재로 바꿀 수는 없는것이며
만일 그것이 비존재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존재가 될 수 있겠는가.
9:147 아무 존재도 없다면 언제 존재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존재가 일어나지 않는 한 비존재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네.
9:148 그리고 만일 비존재가 사라지지 않으면 존재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나니
존재하는 것은 비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한 개체가 두 가지 서로 용납하지 않는
성질을 갖게 되는 모순이 일어나기 때문이네.
나.結破滅有自性결파멸유자성
9:149 그처럼 발생하는 것이 없으므로 소멸하는 것도 없나니 그러므로 중생들은 실제로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네.
다) 결론적으로 윤회와 열반이 둘이 아님이 성립한다
9:150 중생들은 꿈속의 대상 같고 실체가 없는 무지개와 같나니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열반과 윤회도 차이가 없다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_()()()_

 

보살수업59 너무 작은 것을 보시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마음을여는힘 #재보시의의미 

핵심메시지   "보시는 마음을 확장하는 수행이며, 재보시의 진정한 의미는 생명을 나누는 것"

10:18 앞 못 보는 이들이 앞을 보고 소리 못 듣는 이들이 소리를 듣게 하시며
출산이 가까운 여인들이 마야데비 왕비처럼 고통 없이 분만하게 하소서!                              
10:19 옷이 없는 이들은 옷을 얻고 굶주린 이들은 배불리 먹고
목마른 이들은 깨끗하고 감미로운 마실 것을 마시게 하소서!                          
10:20 가난한 이들은 재물을 얻고 슬픔에 젖어있는 이들은 기쁨을 얻으며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은 희망을 되찾게 하소서!

#마음을여는힘

닫힌 마음은 갑갑합니다. 좁은 방이 답답하듯 말입니다. 행복의 시작은 이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도심 숲 속 작은 공간에서 사방이 트인 바닷가로 여행을 가면 마음은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산과 바다를 찾는 것이겠죠? 이처럼 장소를 옮기는 것으로도 마음을 일시적으로 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간이 닫히면 마음도 다시 함께 닫히게 될 것이니, 지속가능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의 기술로 여는 것입니다.
수 많은 스승들이 제자들의 좁은 마음을 확장시키기 위해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입을 모아 동의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보시바라밀을 제시합니다. 

모든 종교에서 보시와 선행을 강조하고, 세간의 학문들이 기부와 봉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분명히 열리기 때문입니다. 

보시, 선행, 기부, 봉사...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본질은 주는 것 그리고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고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닫힌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닫힌 문 안으로 택배를 전달하는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보살의수행 

보살의 수행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푸라기 같은 하찮은 것을 보시하는 것에서 마음을 길들입니다. 

이것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게 되면 조금 더 큰 것을 줍니다. 

이 연습의 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지표가 바로 '무주상보시'입니다. 

무주상보시란 

첫째, 주는 순간 아깝지 않는 정도입니다. 둘째, 주고 나서 준 것을 잊어버릴 정도의 양입니다. 

지푸라기, 밥 두 숫가락을 보시한 후 '내가 줬어!'라고 기억하며 잘난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무주상의 용량이고, 이 용량이 커짐에 따라 주는 것의 크기와 귀함도 점점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방주의? 안됩니다! 그런 보시는 마음을 여는 효과가 미약합니다. 더불어 순식간에 다시 닫혀 버립니다. 

기부증 영수증을 크게 끊을수는 있겠지만, 마음을 여는 수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보살수행을 이어가는 이들은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주게 됩니다. 

이것이 보살수업을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들어선 길의 모습입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 마음 속 아귀가 저항감을 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탐욕이라는 아귀를 조복 받는 과정이 바로 보시바라밀이고, 이 수행을 통해 무주상의 용량은 점점 커집니다. 

용량이 커질수록 마음도 함께 광대해지니, 자신이 살아가는 진정한 집인 마음의 평수가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보살은 이 무주상의 용량이 커질수록 마음이라는 불국토를 아름답게 장엄하고 광대하게 확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가지보시 

<금강경>을 비롯한 수 많은 대승삼장에서는 세 가지 보시의 종류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재물을 보시하는 재보시, 둘째는 안심을 보시하는 무외보시, 셋째는 진리를 보시하는 법보시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보시의 공덕에 대해 차등을 두며 재보시가 가치 없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 오해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재보시란 '나'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모든 소유물을 나누는 것입니다. 

각자 무주상의 용량에 따라 지푸라기를 선물하든, 돈을 선물하든, 집을 보시하든, 시간과 에너지를 보시하든, 목숨을 보시하든 상관없이 그 보시물이 내 소유물이라면 모두 재보시의 카테고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이 재보시의 가치를 폄하하지 마세요. 직접 소유물을 보시해보신 분들은 알 수 있습니다. 

초코파이 하나를 보시할 때도 마음 속 아귀가 얼마나 저항을 하는지를. 용량을 넘어서는 보시는 누구나 큰 번뇌를 경험하게 됩니다. 보시하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거든요. 
남들과 보시의 양을 비교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큰 것을 보시할 수 있으면 당연히 큰 공덕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각자 무주상의 용량이 다르기 때문에, 이 용량을 초과하는 기준선이 전부 다릅니다. 

기준선 안에서 하는 보시는 그것이 지푸라기이든, 좋은 노트북이든, 멋진 옷이든, 목숨이든 상관없이 똑같은 번뇌의 저항을 경험해야 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불편한 마음의 저항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이기에 마음을 열고 확장하는 수행의 관점에서 본다면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봐야 합니다.
무외보시를 하는 가장 지극한 방법으로 경전에서는 목숨 보시를 자주 언급합니다. 

내가 가진 소유물 중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목숨이죠? 그러니 사실 무외보시란 재보시의 일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난이도가 높은 재보시라고 해야 할까요? 또한 무외보시로 자주 언급되는 웃는 얼굴과 편안한 말투를 보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도 소유물이요, 말투도 소유물 아닙니까? 재보시의 일부입니다. 

다만 이 경우 무외보시가 언급되는 뉘앙스의 결이 조금 다릅니다. 

보시할 수 있는 재물이 없는 경우 웃는 얼굴과 힘 나는 말을 보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했던 것처럼 보시의 난이도는 매우 주관적인 평가의 요소입니다. 성향과 용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칭찬 한 마디를 하여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무외보시가 쉬울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칭찬은 어렵지만 멋진 옷을 선물하는 것은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중생은 수 많은 소유물을 지니고 있고, 그 모든 소유물 각각에 대한 집착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집착이 강한 소유물일수록 보시하는 것의 난이도는 높아지는 것이죠.

#결국수명보시 #재보시의의미 

무외보시도 결국 재보시와 그 결이 동일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한 가지 관점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무외보시의 최고 난이도는 목숨보시입니다. 그런데 모든 보시 중 가장 쉬운 보시인 재보시도 결국 목숨보시입니다.

왜 그럴까요? 재보시의 대표적인 보시물은 돈입니다. 그럼 돈은 무엇일까요? 돈이란 시간을 담고 있는 도구입니다.

왜 우리가 일을 한 뒤 시급을 받게 되냐면, 시간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들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이 돈은 시간을 팔아서 교환하는 것입니다.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중생에게 있어 시간이란 결국 수명이요, 생명입니다. 이 지점에서 중생이 처한 비극적 역설이 드러납니다. 생존을 위해서 수명을 팔아야 하는 존재가 바로 중생인 것입니다.
재보시의 공덕을 우습게 보는 문화는 어쩌면 돈을 우습게 쓰는 태도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돈을 벌지 않는 학생들이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옷을 입습니다. 

이는 100만원이라는 돈을 벌기 위해 부모님이 수명을 팔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저임금 기준으로 자신이 10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100시간을 팔아야 합니다.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니, 한 번에 4시간을 아르바이트 한다면 25일 동안 일을 하며 자신의 시간을 팔아야 하는 돈입니다. 이 시간을 파는 경제활동을 직접 해봤다면 결코 함부로 돈을 쓰지 못 합니다. 

그리고 재보시의 공덕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재보시도 똑같이 수명을 보시한 것입니다. 물론 수명의 일부를 보시한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재보시와 무외보시는 모두 수명을 보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 난이도가 다를 뿐입니다. 

스스로의 무주상 용량에 걸맞게 보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살의 수행이 지푸라기를 보시하는 것에서 결국 목숨을 보시하는 것에 이르도록 훈련되는 이유는 그 모든 보시가 사실상 하나의 일관된 선 위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귀한 것을 줄 수 있는가? 집착 없이? 이 용량이 커나가는 과정이고, 이는 동시에 마음이 열리고 확장되는 과정입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붓다의 제자들은 밥 두 숫가락을 보시한 재가불자들에게 축원을 했습니다. 

만약 보시한 불자가 이 밥 두 숫가락의 공덕으로 미래에 제가 큰 부를 이루기를 발원한다고 하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라고 답변하십니다. 

밥 두 숫가락으로 큰 부를 이루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이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부처님 당시에 수 많은 외도들이 스님들의 이 축원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과장광고 느낌인가요?
이 글을 읽고, 보살수업을 들으신 지금도 밥 두 숫가락이 작아 보이시나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자에게 있어 이 밥은 생명입니다. 특히 예전에는 차제걸이를 했기에, 하루 5집을 차별없이 탁발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공양물이 적든 많든, 그것으로 하루의 생명을 유지했어야 합니다. 

이 밥은 수행자의 목숨을 연장해준 보시입니다. 

수행자는 그 연장된 인간 삶의 희유한 기회를 살리기 위해 온 삶을 바쳐서 수행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이 위대한 수행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 밥 두 숫가락의 공덕이 작은가요? 

생명을 보시했고, 생명을 보시 받은 것입니다. 그 공덕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재보시의 공덕을 우습게 보는 이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보시해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마음 속 아귀의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항복했다는 지표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재보시는 단순히 천원, 만원, 백만원을 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재물의 본질을 보세요. 

수명을 보시한 것입니다. 특히 수행자는 그 보시물을 받아서 생명을 유지했고, 그 생명을 오로지 성불의 길에 투자합니다. 

아무리 작은 보시라도 위대한 공덕을 낳을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수박씨 하나가 달달한 수박을 낳는 이 자연의 이치가 재보시 공덕의 성장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보살수행을 한다면 할 수 있는 보시를 기꺼이 하세요. 기쁘게 발원하세요. 

보시의 용량이 커져나가는 과정을 즐기세요. 오직 주는 것으로만 삶은 행복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길_()_

 질문
"재보시를 통해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시가 개인적인 성장과 깨달음에 어떻게 기여한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