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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에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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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 : 붓다스쿨

 

 

57회차 가을정진 62일 (5666일)

 

 

쓸모 없는 말로 이루어진 천 게송보다는 듣고 나면 고요해지는 유익한 게송 단 하나가 더 나으리.
<법구경> 

https://youtu.be/j9SsPPMPJ5U

정진의 핵심은 반복 // 꾸준함과 연관 (꾸준함은 탁월함을 넘어선다) 

꾸준함을 만들어주는 5가지 법칙

수행 :  (정상적이지 못한 것을 정상적으로) (건강치 못한 상태를 건강하고 정상상태로) 

수행을 하면서 정상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되고 있는지.. 점검 

1. 먼저 체력부터   (내 몸은 내것.. 나를 도와줘야 한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방해는 no // 체력부터) 

2.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가볍게 (항상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자꾸 지면 자책하게 된다. 

3. 자책보다는 칭찬을 (마인드셋 . 사람들은 묘하게 양심적이다.. 경험적 근거가 없으면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근거가 쌓여야 자기 자신을 칭찬할 수 있다) 

4. 완벽할 필 요 없다.. 대충대충

5. 자신을 믿어라 (열린 자화상) 

꾸준함의 힘을 가지고 반복

반복하면 성취.. 

꾸준함을 위한 최고의 전략 : 정명 (직업x 생활) 

 

행복경

악을 싫어해 멀리 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며 선을 행함에 소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다

 

왕생게 12송
여래와 같이 있는 깨끗한 대중정각의 꽃으로부터 화생하고 부처님 법의 맛을 좋아하고 원하여
선 삼매로 밥을 삼으며           밝게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_()()()_

 

입보살행론 107일차

나. 주처가 수승하다
8:26
동굴이 비어 있는 절이나 나무 밑에 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착 없이 살 수 있게 하소서.
8:27
아무도 '내 것' 이라 주장하지 않는 시원스레 열려있는 넓은 곳에서
아무 집착 없이 자유롭게 언제나 거기에 머물게 하소서.

다. 자생이 수승하다
8:28
발우 한 개, 아무도 원치 않을 옷 같은 몇 가지 물건만 가지고
두려움 없이 '나 자신' 이나 '내 것' 에도 집착하지 않고 살게 하소서.

라. 厭離(염리)가 수승하다
가) 몸에 대한 탐착을 버리기 쉽다
8:29
그리고 공동묘지에 가서 보면 내 몸도 시체나 다름없이
시시각각 썩어가고 있다는 내 몸의 무상에 대해 명상할 수 있으리라.

8:30
내가 죽어 이 몸이 썩으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
이리나 늑대도 가까이 오지 않을 만큼 그렇게 되리라.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_()()()_

 

 

보살수업 #보살의몸값 #친절한태도 #보살에대한악의 

Ⅳ. 보디삿트바를 공경하고 찬탄한다

1:34 이렇게 발심하여 널리 보시하는 불자에 대해 만일 악의를 가진 행위를 한다면
       악의를 가진 찰나의 수와 같은 겁 동안 지옥에 떨어진다고 부처님은 설하셨나이다.

#보살에대한악의

악의 그리고 해악은 분명한 악업입니다. 특히 해악의 경우는 범죄이기도 하죠.
그런데 논에서는 특히 보살에 대한 악의와 해악을 경계합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그냥 겁주는 것 아닐까요? 일단 보살은 중생을 두려움으로부터 구제하기를 희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겁을 줄 이유가 없죠? 논리를 따라와보세요.

#한시간의값

사람에게는 몸값이라는 있습니다. 그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수치입니다.
이 몸값은 대부분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생산해낼 수 있는지에 따라 변동됩니다.
아무런 기술과 지식이 없는 경우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노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 최저시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에 따라 시간의 가치는 높아집니다.
붓다는 이생의 행복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기술과 자비로운 성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만약 기술과 지식에 '전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그 시간의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집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한 시간 동안 얼마를 벌 수 있느냐가 중요하게 다가오겠지만,
그 본질은 한 시간 동안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는 역할에 대한 분별입니다.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몸값을 정한 것입니다.

#보살의몸값

보살의 몸값은 매우 높습니다. 특히 보리심이 완성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몸값은 높아집니다.
보살은 철저한 서비스 정신을 갖추고 있는데, 단순히 타인의 불편을 해결해주거나,
어느정도 이익을 제공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인연 닿는 이들의 모든 고통을 그치도록 돕고,
완전한 행복에 이르도록 조력하는 서비스를 합니다.
그것도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말입니다.
결국 몸값이란  세상에 무엇을 팔거나 줄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데,
보살은 무한한 타인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이익과 행복에 이르는 기쁨을 선물합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그리고 하지 않는 일 입니다.
그렇기에 거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보석을 찾은 것과 같은 희유한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잠재몸값

보살의 몸값 상승의 기대치는 매우 큽니다. 이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한 
결국 후퇴했다가도 점점 보리심이 증장될 것입니다.
보리심이 커가는 속도에 따라 중생에게, 세상에 줄 수 있는 이익도 점점 커집니다.
이 증가폭에 걸맞게 몸값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보살은 일체중생을 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보살이 이 보리심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이 보리심을 완성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기대값이라는 것은 무한한 것입니다.
송덕사에서는 올해 7,000kg 김장을 해서 지역의 어려운 이들에게 극락김치를 나눠주려고 합니다.
이것이 현재 송덕사가 실천하는 보살행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붓다의 마음을 전하는 곳, 송덕사의 보리심이 증장된다면?
보살행의 힘이 더욱 커진다면? 나중에 70,000kg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도 많다고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보살이 일체중생을 책임진다는 말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김장김치로 비유를 해보자면 일체중생의 범위를 확 줄여서 지구의 인구 80억명에게 
김장김치를 나눠준다고 해보겠습니다.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나요?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매년 나눠줍니다. 어떤 가치를 지니나요?
보살은 김장김치를 나눠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모든 고통을 제거하고 행복에 도달하도록 돕는 서비스를 한다니까요?!
그 몸값이 어떻게 상승할지 잠재력과 기대값이 예상되시나요?

#일체중생의피해

보살을 해치는 것, 보살을 방해하는 것이 엄청난 악업인 이유는 보살과 일체중생은 일종의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비유하자면 일체중생의 가장입니다. 일체중생을 어깨에 짊어진 그 보살을 방해한다면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일체중생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보살의 보살행을 방해한다는 것은 일체중생의 이익을 줄이는 행위입니다.
소송을 하게 되면 피해자의 몸값을 고려하여 손해배상액이 달라집니다.
피해자가 한 시간 일을 하지 못했을 때의 손해액이 케이스마다 전부 다를테니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보살을 방해하는 것? 이것은 시간당 무한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논에서는 악의를 품은 찰라수와 같은 겁을 지옥에 산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시나요? 1초가 64찰라입니다. 그럼 1초동안 악의를 품으면 64겁을 지옥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행을 방해하는 피해보상액의 표준금액인 것입니다.
왜 이렇게 과하게 책정이 되었는가?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보기에는 딱 맞는 셈법입니다.
보살의 몸값은 높고, 기대몸값은 무한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이된다는책임

보살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살이 악용하면 안 됩니다.
전 처음 이 구절을 접했을 때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내가 보리심을 일으켰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싫어하는 모든 중생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나요? 보리심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멋있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비난 받을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살이 원인제공을 해놓고, 그 미끼를 물고 누군가가 악의를 품는다면,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가 되나요?
일체중생을 구한다고 해놓고, 오히려 일체중생을 지옥에 가두는 행위 아닐까요?
그렇기에 보살은 더욱 더더욱 더더더욱 신구의 삼업의 위의를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원리입니까? 보살인 내가 잘못한 일 때문에
누군가 나쁜 마음을 품는다면, 그가 무한한 세월 지옥에서 고생해야 한다니...
보살은 눈짓 하나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난 이런 원리로 보호 받는다. 다들 조심해라?!'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는 분명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1:35 그러나 어떤 사람이 불자에 대해 청정한 마음을 가지면, 그 과보는 이전보다 더욱 증대하듯이   
       모든 불자를 소중히 하면 악업은 일어나지 않고  선업만 늘어날 뿐이나이다.

#친절한태도 #무조건적사랑 

물론 반대의 면도 있습니다. 몸값이 높은 존재에게 이익을 준다면
그에 대한 보상도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도움이라도 그 생산성이 다르니까요.
보살을 돕는 것은 일체중생을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살이 보살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리심은 마음이기에 티가 나지 않습니다. 떠벌리지도 않습니다. 누가 보살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럼 사실 우리가 나쁜 마음을 품고 해악을 끼침으로 인해 언제 무한한 지옥행 열차를 예매할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반대로 위대한 공덕을 쌓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이 랜덤의 확률을 무서워해야 할까요? 혹시 피해를 끼쳤는데 보살인 경우,

'아~ 잘못걸렸구나!' 하고 똥 밟았다고 생각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가장 단순한 행동 원칙이 있습니다. 위험을 피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단 하나의 원칙,
그것은 모든 중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친절과 존중이 태도와 습관이 된다면
보살에게 해를 끼칠 일도 점점 적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보살에게 친절할 확률은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방법도 단순하고, 성공 확률도 높은 방법입니다. 리스크를 극도로 줄이며, 리턴은 최대로 높이는 방법입니다.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렇기에 붓다는 자비로운 성품을 습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신납니다. 그냥 내 태도만 친절과 존중으로 바꾸면 지옥을 면하고, 위대한 공덕을 자동으로 쌓을 수 있다는 것!
엄청난 이익이 있는 공부입니다. 보리심 공부는 너무 신납니다.

1:36 누구에게든 성스러운 보리심이 생겼다면 나는 그분에게 예경하나이다. 
       자신을 해치는 이들까지도 큰 행복(大樂)으로 인도해 주시는 이 행복의 원천에 귀의하나이다.

#특히보살 

일체중생 누구에게나 무조건적으로 친절해보세요. 물론 누군가 보리심을 지녔다고 판단된다면
특히 더 잘해주세요. 동료자나요?
그 보살은 든든한 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세요. 보살을 조력하는 수많은 불보살이 있고,
그를 보호하는 호법천신들이 있습니다. 더불어 그 보살의 어깨에는 일체중생이 함께 있습니다.
보살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모든 불보살과 일체중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모두에게 친절해야 하겠지만, 만약 누군가가 이 위대한 보리심의 길에 들어섰다면
그는 특히 부처님을 섬기듯 존중해야 합니다. 그가 보살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조력해야 합니다.
이 도움이 일체중생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은 물론이요, 
투자 대비 지극히 위대한 공덕을 낳는 최고의 투자처라는 것도 진실입니다.
눈 어둡다면 모두를 눈 밝은 이라면 특히 보살을 존중하는 태도를 갈고 닦으시면 좋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