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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스쿨

원빈스님과 함께 보리심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기도, 수행, 공부, 봉사를 이어가는 붓다스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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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_()()()_

 

59회차 봄정진 18일 (5798일)

 

의자 같은 것을 옮길 때 부주의하거나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문도 소리 나게 여닫지 말며, 항상 겸손하고 조용한 것을 기뻐해야 하네.
<입보살행론>중

 

https://youtu.be/Uua4mldFPq0

 

행복경

분수에 맞는 곳에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으며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다

 

왕생게 3송
저 세계의 모습을 관찰하니 삼계의 도보다 훨씬 뛰어나며 끝이 허공과 같아 넓고 커 다 함이 없더라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_()()()_

 

숫타니파타 1장 7 천한 사람의 경(55일차) 
140 베다 독송자의 집안에 태어나 만뜨라*에 친숙한 브라흐민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또한 반복적으로 악한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1 그래서 이 세상에서 비난받고 저 세상에서는 비참한 곳에 태어납니다. 

(브라흐민) 태생이 그들을 비참한 곳에 태어남이나 또는 비난받는 것으로부터 막지 못하였소.
142 출생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오. 출생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는 것도 아니오.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고, 행위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는 것이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_()()()_

 

입보살행론4 모든 불자에게 필수 - 네 가지 사유명상,

생각을 바꿔 삶을 변화시키는 사유 명상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려면 방향성이 필요합니다.

그 방향을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가듯, 생각길을 한 걸음씩 축적할 때 삶은 분명히 변화합니다.

생각이 변화한만큼 삶이 변하는 것이니까요.
한국의 불자들에게는 명상이란 '집중'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큰 오해입니다. 

명상은 마음을 훈련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훈련 주제도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집중이고 다른 하나는 관찰입니다. 집중은 마음을 안정시켜 고요하게 합니다. 

하지만 관찰은 집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산만함이 생긴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추구하는 바가 고요함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 이해와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멈춰야 명상인가요?' 관찰 명상은 적극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물론 관찰 명상 속에서도 세부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습니다.  흘러가는 생각들을 관찰하는 것이 

수행 주제인 경우와 특정 주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이 중 후자는 관찰 명상 중 사유 명상입니다. 이는 팔정도 중 정사유의 전통 중 하나로써, 

생각을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보를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문의 전통으로 문혜를 키우게 됩니다. 다음으로 먹은 정보에 전념하여 사유해야 하는데, 

이것은 연각의 수행으로 사혜를 키웁니다. 마지막으로 먹고 사유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경험과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수행으로 수혜를 생성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사유 명상은 배운 것을 삶의 변화로 연결시키는 교량입니다. 

이 다리가 끊어져 있다면? 아무리 배워도 삶은 변화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필수 사유 주제 4가지
<아티샤의 명상요결>에는 모든 불자들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네 가지 사유 명상 주제를 소개합니다.

선과 청정이라는 훌륭한 씨앗을 준비하여 마음에 심으려면, 가장 먼저 토질을 좋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퇴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네 가지 사유 명상입니다. 먼저 짧은 문장으로 모두를 소개합니다.
첫째, 희유하고 소중한 인간 삶의 여가와 기회
둘째, 죽음과 무상
셋째, 윤회계의 불만족스러운 본질
넷째, 카르마의 법칙
이 사유 명상의 주제가 보살수업에 등장한 이유는 첫째인 인간 삶의 특징 때문입니다. 

보리심은 두 가지 의지처가 필요함을 밝혔습니다. 그 중 첫째가 바로 인간 삶입니다. 

논전에서는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인 열반의 실현을 기준선 이상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목숨을 보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보시 중 최고의 보시에 해당되는 목숨 보시를 위대하다고 

찬탄하는 것이 아니라 만용이자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망각한 어리석음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 희유하고 소중한 인간 몸을 버린다면, 우리는 행보리심의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체 또는 후퇴 뿐일 것입니다. 수 많은 철학자들은 '죽음'에 주목합니다. 

죽음 이후 어떤 경험이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의 영역이죠. 

철학자들이 죽음을 중요시여기는 이유는 죽음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음과 가까이 할 때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인간 삶의 시계는 죽음을 마주할 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붓다는 죽음명상을 항상 반복하기를 권장하셨습니다.

이는 제행무상의 일부분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모든 무상함 중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무상함입니다.

왜냐하면 변화하는 모든 존재 중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목숨일테니까요.

붙잡을 수 없는 모든 집착 중 가장 강한 집착이 바로 생존에 대한 집착이니까요.

죽음과 무상에 대한 사유명상의 반복은 역설적이게도 마음의 생기를 충전하는 비결이 됩니다.
윤회하는 세계를 붓다는 사바세계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불만족스러움을 특징으로 하고 그렇기에 견디고 인내해야 하는 경험이 가득합니다. 

인간 삶의 소중함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이 윤회계의 불만족스러움에 직면해야 합니다. 

직접 경험이 불가능하다면 정사유를 통해 간접경험이라도 해야 합니다. 

이를 명심하지 않으면 착각하게 됩니다.  현재 지옥 같은 인간의 삶이 진짜 지옥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무유애의 갈애 즉, 존재하고 싶지 않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자살을 하는 이들은 죽음에서 희망을 찾는 심리가 있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고통보다는 죽는게 낳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인간 삶을 버리는 순간 남은 경험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삶입니다.

특히 '나'라는 인간을 죽인 살인의 악업을 저지른 경우에는 가중죄가 더욱 심각합니다.

결국 그 끝에는 기대했던 희망처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윤회계의 불만족스러운 본질에 대한 사유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카르마의 법칙은 인과의 법칙입니다. 

인간의 행위인 업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게 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도 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앞선 세 가지 사유가 감성적인 측면을 자극하기도 하는 반면, 이 카르마의 법칙은 철저하게 이성적입니다. 

인과율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인과의 논리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유한다면 지혜가 증장되는 것은 물론이요, 

자연스럽게 악을 그치고 선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사유하는 가장 쉬운 방법 - 글쓰기
정사유 명상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법은 단순합니다. 주제와 시간을 정합니다.

그 시간 동안 주제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주제 외의 다른 생각들은 모두 망상으로 판단합니다.

망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다시 주제로 되돌아가서 적극적으로 사유합니다. 어떤가요?

원리가 단순하죠? 하지만 실천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훈련이 되지 않은 마음은 원하는 대상에 마음을 묶어 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친 원숭이, 술 취한 코끼리, 발정난 개처럼 이곳 저곳 날뛰는 것이 범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대안을 알려드립니다. 정사유 명상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글쓰기입니다. 

어차피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주제에 마음을 모아줍니다.

더불어 글쓰기는 생각과 함께 손의 촉감을 활용하고, 또한 써지는 글을 바라보는 시각도 활용합니다.

이처럼 멀티감각을 활용할 때 두뇌는 그 경험을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이 판단은 집중력을 불러일으킵니다.

15분 동안 눈감고 명상을 하라고 말하면, 시간이 굼뱅이처럼 느리게 가는 사람도

주제를 주고 글을 쓰라고 하면 화살처럼 금방 시간이 다 지나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몰입이 쉽게 되는 것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물론 글쓰기를 하지 않고도 생각만으로 정사유 명상이 가능하다면 이것이 베스트입니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없이도, 공책이 없이도 언제든지 마음에 글을 쓸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언제든 진리에 대해 정사유를 반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니 최고의 수행 주제입니다. 

분명히. 정사유 하세요. 그래야 아스팔트 같이 단단한 마음이 열립니다. 

인색한 마음에서 단 하나의 선도 자라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 거북이 등껍질 같은 답답함 때문입니다. 

훌륭한 선의 씨앗을 아무리 주어서 모아서 마음에 심어보려고 노력해봐야 튕겨 나갈 뿐입니다. 

망가질 뿐입니다. 의심만 늘어날 뿐입니다. 마음은 점점 좁아질 뿐입니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려면? 정사유 명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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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수업7 수행에 임하는 마음가짐


탐진치로 수행하지 말 것
수행에 임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법다운 마음으로 요약되는 이 태도는

악셀레이트를 밟으며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수행의 진전이 없거나, 오히려 지속적으로 퇴보 중이라고 느낀다면 최우선적으로 태도를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수행의 목적은 명백합니다. 개개인의 개별적 목적이 있을 수 있으나, 

수행 그 자체가 고안된 본래의 목적은 무탐, 무진, 무치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의 태도 역시 이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수행하지 말 것'
이것이 수행에 임하는 법다운 태도입니다. 탐욕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개인적 목적이 수행에 끼어들게 되면, 원하는 상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산만한 마음을 해결하고 싶어서 수행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를 희망할 것입니다. 

이 때 고요함에 대한 서원을 넘어 탐욕으로 나아가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한 번이라도 명상 도중 고요함을 경험하게 되면, 그 마음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그 경험했던 그 마음을 재현하려고 하고, 흉내내며,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까지 합니다. 

원하는 상태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탐욕의 수행입니다.
분노로 수행한다는 것은 이와 반대입니다. 희망이 생겼으니, 이와 다른 상태는 모두 사라지기를 원하기 시작합니다. 

고요함에 대한 탐욕이 시작되면,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경험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실제로 없애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니 더욱 저항은 기승을 부립니다. 

원하지 않는 상태는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 이것이 바로 분노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치로 수행한다는 것은 스스로 탐욕과 분노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수 많은 수행자들이 호의 대상은 지속되기를, 오의 대상은 제거하기를 원하며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는 습관입니다. 

그렇기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니,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알아차리면 더 이상 무의식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깜깜한 것을 무명이라고 하고, 이를 우치로 수행한다고 표현합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의 숙련도에 따른 수행 과정의 변화 탐진치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일단 스스로 어떤 마음을 쓰고 있는 깜깜합니다.

사띠의 깨어남이 일정 수준 이상 충족되기 전에는, 스스로 탐진치를 쓰고 있음이 온전히 '무의식'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시작은 기본기 연습부터입니다. 그렇기에 일단 기본기 연습과 레슨 그리고 실전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띠 명상에도 5가지 기본 명상이 있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기본기를 자율학습으로 연습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올바르게 되려면? 당연히 레슨을 받아야겠죠? 

그것이 바로 명상에 대한 강의와 명상 수행을 점검 받는 인터뷰입니다. 이 기초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 탐진치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띠 수행의 초급단계의 기본기 훈련과 레슨을 통틀어 '유위 명상'이라고 명칭할 수 있습니다.
유위 명상에서 핵심 과제로 주어지는 '마음의 일'은 인위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탐진치로 수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삼독심의 마음가짐은 비유하자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긴장 상태입니다. 

아직 힘을 빼고 수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힘을 빼라고 아무리 말해도 힘이 빠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힘을 빼라는 말을 하지 않을수는 없습니다. 지향점을 잊으면 외딴 길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기본 과정을 겪고 나면 사띠의 질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좋아집니다. 

그럼 스스로의 무의식에 해당되는 부분이 일부분 밝아지는데, '의식화'를 거친 것입니다. 

그럼 스스로 명상 수행을 탐진치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 자각됩니다. 

이 때부터는 레슨 시간에 듣는 조언이 더 이상 지적 받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자각하고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부터 실전에 돌입할 수 있는 중급 수행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급 단계에서도 여전히 기본기 연습을 해야 하고, 레슨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초급 단계와 달라진 점이 하나 있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자각하고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기본 명상의 원리와 마음의 일에 대한 이해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기 연습 시간 뿐 아니라 

일상 생활이라는 실전에도 마음의 일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상 속에서 안심과 전념, 집중과 몰입의 힘이 적용되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런 결과는 당연합니다. 힘이 생겼으면 자연스럽게 활용되기 마련이니까요. 
고급 단계로 나아가는 수행은 '무위 수행'입니다. 

이는 수행의 본래 목적인 법다운 마음가짐의 완성에 도전하는 수행입니다. 

무탐 무진 무치의 상태를 경험한 것을 넘어서 숙달되고 자유로워지는 수행입니다. 

이 때는 사실상 복잡한 마음의 일이 없습니다. 사띠의 대상도 없습니다. 

그저 깨어있으며,  다가오는 모든 경험을 자연스럽게 소화합니다. 

선도 악도 아무것도 억제하지도 불러일으키지도 않습니다. 

마음 속 쓰레기통에 처박아 놨던 모든 악업들을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납니다. 

물론 보물처럼 감춰뒀던 선도 만나겠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각으로 경험하고 흘려보낼 뿐입니다. 붙잡을 것도 없고 피할 것도 없습니다. 

깜깜하지도 밝지도 않습니다. 무탐 무진 무치에 숙달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수행의 과정이란 무탐과 무진 그리고 무치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처음 수행에 임하는 이들에게 레슨 선생님이 해주시는 단 하나의 방향성은 바로 이 올바른 마음가짐 뿐입니다. 

초급에서 배우는 모든 기본명상의 마음의 일도 이 태도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중급에서 배우는 모든 실전 훈련도 이 법다운 마음가짐을 위해서입니다. 

고급 단계를 통해 숙달되기 위해 반복하는 훈련도 결국 이 삼독심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렇기에 사띠 명상이란 번뇌의 디톡스 과정이고, 번뇌의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입니다. 
태도, 마음가짐은 수행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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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수업 학습지 73일차


1️⃣ 오늘의 글
지혜로운 완벽주의
1980년 심리학자 데이비드 번스는 완벽주의자를
“불가능하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
강박적으로 끊임없이 불가능한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
자신의 가치를 전적으로 생산성과 업적으로 측정하는 사람”이라고 기술했다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 연습> 중-

완벽에 가깝게 노력하는 것은 나쁜 버릇은 아닙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문제가 될 뿐입니다.
항상 탐욕을 바탕으로 하는 행동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부딪히죠. 다투죠. 자신 또는 타인과.  원하는 것과 탐욕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은 인과에 걸맞습니다. 씨앗을 심고, 그만큼의 결과를 희망합니다.
전혀 탐욕스럽지 않죠? 오히려 지혜로운 예측입니다.
탐욕은 인과에 걸맞지 않습니다. 하나를 하고 둘을 바랍니다.
심지어 셋, 열, 백을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집니다.
이것이 탐욕입니다. 어리석기에 탐욕이라고 합니다.
탐욕이 무서운 이유는 탐욕끼리 부딪히는 순간 분노가 함께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낳습니다. 분노하도록 합니다. 서로 싸우도록 유도합니다.
어리석은 탐욕으로 인해 어리석은 다툼을 이어갑니다.
원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건강하고, 필요한 욕구입니다.
에너지원이죠. 구분할 줄 아셔야 합니다.
만약 탐욕을 바탕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한다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릅니다.
반대로 원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힘빼고 지혜롭게 완벽을 추구한다면 사실상 아무런 부작용 없습니다. 
지혜로운 것이겠죠?

2️⃣ 오늘의 질문
- 완벽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이는 것, 이것은 언제 문제가 되나요?
- 원하는 것과 탐욕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은 OO에 걸맞습니다. 탐욕은 OO에 걸맞지 않습니다. 빈 칸에 들어갈 적절한 말은 무엇인가요?

3️⃣ 오늘의 키워드
#원하는것 #탐욕 #사여의족 #욕여의족 #정진여의족 #인과율 #지혜 #완벽주의

🔹 오늘의 공지
- 인등 기도 축원문 영상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TqU/1338
- 장학생 추천도서목록 추천?!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TqU/1339

 

원빈스님 북큐레이션 [잠 잘자는 수면법]

 

https://youtu.be/qdiOIsxAVJo

 

덕원스님의 수행이야기 [꿈만 꾸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안타깝게도 꿈을 꾸는 사람 중에는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몽상가로 남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을 목표로 전환해야 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로드맵이 스스로 그려진다면 우리는 행동하게 됩니다.
목표를 향한 행동은 삶의 활력을 줍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하겠다는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꺼이 하겠다는 결단력의 힘이 우리를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꿈(간절한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