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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 : 붓다스쿨

 

보살수업 #중생즉붓다 #기억못하는죄 #부처님의슬픔 #후회하지않는법 

그러므로 제가 지금까지 중생들에게 끼친 해악은 모든 부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오늘 제가 이 모든 악행을 참회하오니 부처님이시여, 저를 용서해 주소서.  -<입보살행론 6:124>-

#중생즉붓다

 

중생은 서로를 만 가지 별명으로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친구와 원수가 있죠.
보살 역시 중생을 부르는 별명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머니입니다.  둘째는 부처님입니다.
어머니의 의미는 [[일체중생이 내 전생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중생은 무한한 윤회를 살았고,
그렇다면 무한한 태어남이 있었을 것이니, 생명을 주신 어머니가 무한한 것입니다.
무한하다는 의미 아시죠? 무한한 중생이 사실상 모두 나의 전생의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의미는 중생의 또 다른 정체입니다. 
중생은 본각의 상태에 머무르다가 어느 순간 무명과 화합하여
본각을 잊어 스스로를 중생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본바탕은 분명히 본각입니다.
본각이란 무엇인가요? 이 본각을 되찾은 존재 즉, 본각에 귀의히여 돌아가 의지한 존재가 바로 붓다입니다.
중생은 이처럼 붓다와 본바탕이 같습니다. 이를 붓다의 씨앗인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현 시점을 보면 절대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중생조차 성불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 장담하시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붓다스쿨의 공부,
성불의 길은 새로운 것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지니고 있으나 잊어버린 것을 되찾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기억못하는죄

 

보리심을 품고 있는 보살의 관점에서 모든 중생은 전생의 어머니이고, 애인입니다. 더불어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은 어머니 붓다를 원수라고 부르며 해를 끼칩니다.
화를 내고, 때리고, 욕하며, 각종 해악을 저지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폐륜입니까? 1년 전에 무서운 죄를 저지를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후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아무것도 기억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기억 못합니다.
그 사람은 죄가 없을까요?
적어도 보리심을 일으키고 이를 보호하며 완성하기 위해 정진하는 보살에게 있어 기억 못한다는 핑계는 불가능합니다.

#부처님의슬픔

 

붓다의 마음은 슬픕니다. 지장보살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립니다.
관세음보살은 간절하게 중생에게 자비롭기를 부탁합니다.
아미타불은 해악이 사라진 극락으로 오기를 권선합니다.
눈 밝은 이들은 중생이 서로간의 정체를 모른채 쌍방간에 끝 없는 해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크게 안타까울 것입니다.

#후회하지않는법

보리심을 지닌 붓다의 제자들은 부디 부처님 눈치를 조금이라도 보면 좋겠습니다.
중생에게 해악을 저지르려고 하는 그 순간, 잠시라도 멈춰서서 심호흡을 하는 동안 기억하셔야 합니다.
일체 중생은 나의 어머니이고 부처님이라는 진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면피 삼아 부처님을 슬프게 하는 죄는 멈춰야 합니다.
기억났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면 중생에게 잘 해주세요.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방법 하나는 일체중생에게 해악을 멈추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지악수선의 이유입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_()_